녹두장군 과 송골매

아무것도 아닌... | 2006-09-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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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九月 이다
하루 아침에 거리엔 반팔이 사라지고
얇은 이부자리에 새벽녘 쯤엔 서늘한 한기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이제 각자 나름대로 한햇살이의 가을걷이 를 해야 할때가 다가 오는것같다.
9월9일, 어제는 가랑비가 막 그친 다음에 벌인 택견판 이라
다소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듯이 서서히 인사동에도 가을냄새가 나기 시작하는게 느껴졌다.

어제 있었던 두 경기에서는 딱 돋보이는 선수가  한명씩 있었다.
한사람은 작년 재작년 전주팀의 에이스로서 무게중심을 가졌던 선수가 어쩐일인지
올해는 얼굴을 한번도 내 비치질 않아서
이젠 나이도 그렇고, 생활인으로서 택견배틀 을 하기엔 벅찬 시절이 된것 아닌가 싶었던
전주덕진팀의 김부중 선수이고.
다른 한사람은 첫선수로 출전해서 전통학교팀  다섯선수의 얼굴을 모두  발차기로 가격 해버린
고려대 팀의 황신구 선수다.

전주팀의 김부중선수는
몸 움직임이 크면서 한발을 들고 팔짝 뛰는듯한 찍기 동작과, 뒤돌려차는 동작을 과감하게 구사 했는데,
시원 시원하고  이 택견판에서 늘 봐왔던 기존선수들과는 상당히 다른 경기 스타일이었다.
( 나는 택견을 배워본적이 없는사람이고, 이 바닥에서 쓰는 전문적인 용어는 아예 모를뿐 아니라,
설사 안다해도 그대로 따라 쓰는게 어울릴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비전문적인 표현이야 말로 솔직한 것이고 더욱  나, 답다.)

그는 작년에도 참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서, 쌓인 택견내공이 만만찮은 사람 이라는 인상을 주었었는데
금년에는 어제 처음 얼굴을 보이면서도 연세대선수 세명을 빼어난 실력으로 딛으며 판막음 해 내서,
역시 덕진팀의 중심 다운 모습을 확인 시켜주었다.
김선수는 작년에 아내 같아뵈는 소박한 여성과, 아기를 안고 함께 온것도 본적 있는데
이 선수의 이미지 에서는 자기 고장의 냄새가 아주 짙다고 할까...어떤 질박함 이랄까...싶은면이 있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때로 근거도 없이 엉뚱할때가 있는데
나는 왠지 그동안 김부중선수의 모습이나 택견하는것을 보면서 백여년전 조선왕조말기 시절을 떠올렸다.
그 척박한 시대, 이미 썩어서 기울어가는 나라에서 부당하게 온갖것을 착취당하는 핍박속에 살아오다가
이제는 참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자며
처절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처 준비도 되지못한 동학 혁명군들의 분개한 얼굴과,
남겨진 가족생각에 애시린, 순진한 걸음 걸음 이 그려지고
그 한무리에 앞장 서 있었을 어느 사내의 어색한듯, 비장한 모습이 자꾸 김선수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것이다.

잘 무장되고 훈련된 일본정규군의 총포앞에 허술한 죽창을든 농군의무리 선봉에 서있는 비장한 그 사내가, 꼭 녹두장군 처럼 투철하고 빼어난 사내일 필요는 없다,
다만 농투성이로 오직 하늘의 뜻과, 사람의 진정성만 믿고서 살아온 순박한 젊은이 가
부정한 권력의 학정에 신음하다가 분개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그 서글픈 시대의 한가운데 서있는,
정말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답게 한번 살고 싶었을, 한 질박한 사내의 모습쯤으로 말이다.

참 뜬금 없게시리 택견마당에서 본 한선수를 놓고서, 이 무슨 거창한 환상 이냐.....^^
그러나 백여년전에 동학혁명의 와중에 이땅에 살았던 사내의 모습이, 바로 저렇지 않았을까 싶은것은,
우리네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택견마당에서  
한국인의 오랜삶을 알고 이해할수있는 사람만이 떠올릴수 있는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사람 빼어난 활약을 한 선수가 있다.
고려대의 황신구 선수를 재작년인가 첨 봤을때,우선 떠오른 이미지는 만화속에 나오는인물 같다는것이다.
생김새가 갸름하다기 보다는, 길죽한 막대기 체형에다  날카로운 송골매의 눈초리를 가진 황신구,군은
강단있는 체질인듯, 마른 뼈속에 힘이 있을것 같은 스타일이다.
대개 이런 스타일이 어느 분야에서건 제몫 이상의 역활을 해내는걸, 나는 생활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신구,군은 택견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진지하다.
나는 그를 보면서 꼭 경기력만이 택견의 전부가 아니라는점을 몸으로 아는 학생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른체형과 쏘는듯한 눈매와는 달리 신구군은 친화력도 있고 타인을 배려 할줄아는 넉넉함도 갖춘듯하다.
술을 못하는지, 언젠가 얼굴이 발그레 해져 가지고 택견판을 구경온적도 있던데
아마 한잔술에 취하는 스타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
이런 신구군을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듯싶다.
물론 나는 아쉽게도 택견선수들 뿐 아니라, 이곳 관계자들과 오가는 눈인사 한번 나눈적이 없는 사람이니
제대로 봤다고 할수는 없을게고, 아마도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것이나,
그래도 경험치 를 놓고볼때, 큰 줄기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을것이란 짐작이 든다.

어쨌든 황신구,군은 어제 전통학교 선수 다섯을 내리 이기는 경기를 했는데,
이런것을 두고 올킬 이라고 해야하나...?
아무리 상대가 강팀은 아니라해도 그게 쉬운일이 아니다.
어제 고려대와 전통학교팀의 택견배틀은 마치 단정한 송골매 한마리가 적진을 내리 휘저어 버린판 이었다.
물론 고대팀 으로선 8강에 올라가는것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신구 군이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가졌던점을 축하 하고싶은 마음이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는 9월초순,
이제 2006 택견배틀도 막바지를 향해서 빠른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제는 김부중 선수와 황신구 선수의 빼어난 모습에서
어스름 저녁에서야  빛을 내는 녹두장군 과, 파란하늘을 치솟는 송골매 한마리의  단정한 비상을 보는듯했다.

현수
신구형~! 멋져요~!
이제 시합 징크스는 완전히 떨쳐 버렸네~

신구 넘 무지 좋아하겠네요.ㅋㅋ 멋진 글과 찬사 감사드립니다.
신구야 멋있었다^^

kkk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신구형에 대한것 거의 맞는거 같아요...ㅋㅋㅋㅋ

근성 신구...

labyrinth
오오 송골매 멋지네요 신구형 별명에 송골매를 추가? ^^;

구경꾼
글을 읽으면서 계속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전율과 감동이 전해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택견배틀을 마치 좋은 소설속에서 보는 듯하네요.

배를사랑
김부중 작년 9전6승1무2패의 실질적 에이스.
8강부터 좋은 활약 기대합니다.

택견홀릭
그동안 왜 안나오시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나오시는군요
김부중 선수!

앞으로의 경기가 기대됩니다^^

매덩
정말 글 최고십니다^^

ㅇㅇㅇ
택견에 문외한이라고 하시는데,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어제 경기장 찾지 못한 것이 후회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