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무술의 의미

맨손무술 | 2007-06-26 22:34
5,351
  택견이 택견다워야 한다는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군요. 어림잡아 추론한다면, 택견은 무예가 아닌 "경기로서의 택견"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듯 합니다.("이종격투기(MMA)도 결국은 룰이 있는 싸움이 아닌 경기일 뿐"에서...) 그렇다면 저는 그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임을 말씀드립니다.

  첫째, 택견은 경기적 측면과 무예적 측면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나무늘보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장에 이용복 회장님이 최근에 국방무예로 택견을 채택하자고 한 취지를 보면 바로 택견의 무예로서의 성격을 그대로 인정하신 말씀입니다. 택견이 무예로서의 속성을 가진 측면은 역사적 사료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또한 감투바위에 패인 수많은 수련의 흔적들과 옛법의 존재 등은 택견이 단순히 경기적인 측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실증자료이기도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택견이 택견다와야 한다고 해서(그래서 결국은 경기일 뿐이라고 해서) 강한 발차기와 강한 주먹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경기적 측면의 택견과 무예적 측면의 택견을 부당하게 대립시켜 얻어낸 논리적으로 왜곡된 결론일 뿐이며, 실질적으로도 자기모순(경기일뿐vs국방무예)인 주장입니다.

  둘째, (이것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볼 수 있는데) "맨손무술"에 대한 정의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무늘보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용복 회장님의 견해는 아주 다릅니다. 나무늘보 님께서 오키나와 가라데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아마도 이용복 회장님께서 "신비주의 무술은 허구"라는 기사를 통해 말씀하신 주장을 따르시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나무늘보님의 글 속에 숨겨진 논의의 배경이지만, 매우 결정적인 부분이어서 이 부분을 따로 명료하게 부각시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 글을 읽었습니다. 가라데와 무에타이, 그리고 카포에라 등이 실상은 맨손무예 이전에 이미 병기무술과 먼저 관련되었다는 사실 적시와 함께  "맨손무술의 본질과 용도는 일격필살도 아니고 살상용도 아니다"라면서 "살상을 방지하면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또 그를 통해 서로 경쟁 작용을 벌이는 것"으로 맨손무술을 정의하신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용복 회장님의 연구성과는 일정부분 인정(타 무술에서 병기무술의 존재) 하면서도, 부당한 개념 재정의를 통한 부당한 결론 도출이라 생각되어 그 분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1) 먼저, 맨손무술의 용도가 살상용이 아니라고 하신 점입니다. 기계적인 의미의 효율성(힘과 강도)으로 보자면, 맨손은 병기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전투의 상황은 단순히 기계적인 의미의 효율성만이 통용되지는 않습니다. 손자병법을 비롯해 수많은 전략전술이 만들어졌던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병기를 들고 싸우는 백병전이라 해도, 병기를 손에서 놓치면 맨손으로 육박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군대에서도 총검술 이외에 태권도를 배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전쟁과 전투의 상황이라면 맨손무술은 필연적으로 또한 자연스럽게 일격필살과 살상용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코 "18세기 이후에 나타난 현상"도 아니고, "일격필살"을 주장한다고 해서 곧바로 신비주의 무술 경향이라고 호도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는 현대적인 상황을 통해 보아도 그러합니다. 국방무술로서 택견은 당연히 일격필살의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그것이 아니다라고 반론을 펴신다면 그 자체로 자기모순이겠죠.)
  또한 일반인들이 배우는 호신술은 극한상황에서의 정당방위를 예정하고 있으며 일격필살의 상황을 당연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상대를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일반인들이 평소에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없기에, 만약에 자신을 해하려는 자가 무기를 들고 있다면, 줄행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맨손무술의 일격필살의 기술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맨손무술은 기계적인 의미의 효율성으로 보자면 병기에 못 미치기 때문에, 모든 것(수련의 정도, 타격점, 힘 등)이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한, 어떤 무술이라도 일격에 필살하기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어렵다고 해서, 위급한 상황에서 일격에 필살하려는 각오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즉, 맨손무술은 이미 그 자체로 궁극적으로 일격필살과 살상용을 예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저는 이용복 회장님이 "일격필살"의 의미를 (기계적인 의미의 효율성에 근거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했기에 여타 무술을 (일격필살을 주장한다 하여) 신비주의로 보는 부당한 논리적 귀결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2) 맨손무술과 맨손싸움(각력)의 개념혼동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맨손무술은 그 쓰임이 전쟁과 전투, 극한상황에서의 정당방위와 같은 상황까지를 예정하면서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입니다. 반면, 맨손싸움(각력)은 아무리 그 의미를 넓혀보았자 가상의 적(경기장에서만 적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곧 상생의 취지로 배려한다는 걸 알기에)을 상정하고 인적손실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제한된 기술만을 허용하고 견줌으로써 일정한 유희로써의 기능을 더하여 공동체의 단합과 상무정신을 제고한다는 협의의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함에도 이용복 회장님은 맨손무술을 맨손싸움과 동일시함으로써 맨손무술의 의미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재정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협의의 개념인 맨손싸움(경기)이 광의의 개념인 맨손무술을 대체하는 논리적 전도가 일어났고, 더 이상 택견에 일격필살도 살상용도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무늘보님과 같은 주장(강한 발길질과 주먹이 필요없다는)도 나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심지어 이러한 논리적 귀결은 "택견은 무술이 아니고 경기일 뿐이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이용복 회장님께서 택견을 "진정한 맨손무술"이라고 주장하시는 내용과 일견 충돌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용복 회장님의 연구결과로 본다면, 철저히 그 관점으로만 본다면, 충돌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즉, 택견은 '신비주의 무술에서 말하는 일격필살'의 맨손무술이 아니고, 맨손무술 본연의 의미인(사실은 맨손싸움의 의미이겠지만)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상호 발전을 도모하는 것. 운동을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자기를 절제하는 법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문화적 의미"에 충실한 맨손무술이라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이때 "택견은 맨손무술이자 경기"라는 독특한 내적 논리정합성을 갖게 되겠죠.

  결론적으로 말해,
  이러한 내적 논리정합성은 철저한 개념의 재정의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개념 재정의에 동의하지 않거나. 구체적인 배경을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주장들이 늘 혼란스럽거나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개념 재정의에 동의한다고 해도 개념과 실제의 불일치로 인해 나타나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즉, 일격필살, 살상용(만약에 제 글을 반박하기 위해 애써 '살'의 개념에만 주목하고, '상'의 개념을 무시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을 뜻하는 옛법의 존재와 역사적 사료의 존재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맨손무술"의 개념을 본래대로 되돌려 놓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논리적, 실질적 난점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택견은 택견다와야 한다"는 나무늘보님의 주장은 매우 간단하지만, 결코 의미있게 토론될 수 없는 난제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택견다운 것인지 알 수 없거나 동의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에 있어 서로가 너무나 달리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오히려 배경과 맥락이 분명히 드러나는 다른 주장으로 바뀌었다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예를 들어, "택견은 경기일 뿐이다"라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세한 배경설명(맨손무술의 의미)이 그것이지요. 이런 말씀을 덧붙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수많은 석학과 시민과 운동가들이 똑같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잘 아실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너무나 간단하고 쉽던 "민주주의"의 의미가 역사와 사회속에서 사람들마다 서로 달리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의 난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학문적인 접근은 저마다 사용하는 "민주주의" 개념의 바운더리와 실제적 의미를 밝혀 정리해내었고(지금도 계속 진행형이지만), 이를 통해 더 나은 의사소통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얻은 지혜는 이와 같습니다. 서로가 주장의 맥락을 충분히 드러내면서 주장을 싣는 그런 모습이 택견판에서도 시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무늘보
잘 읽었습니다. 예리하시군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