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 독무대

아무것도 아닌.. | 2007-09-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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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어딘가를 적시고 흘러 내린 강가,
한웅큼 퍼담은 물모래 속에서, 사금 알갱이를 하나하나씩 골라내듯이
택견배틀도 거르고 걸러서 여덟개팀을 간추려 냈다.
이제 머잖아 이들중에서 가장 빛나고 순도가 높은 사금이 가려질것이다.

어제는 두사람의 독무대가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 한층 다부지고 기민해진 국민대팀의 홍윤석 선수는
혹시 부전공을 발레도약에서 의상 칫수측정으로 바꾸지 않았는지...의심이 갔다

어제 그는, 아직 택견배틀판에 낯선 대택서울팀과 맞붙어서, 첫선수를 물리치고난후 승리의 본데뵈기를 하는데.
그 숭글 숭글한 시선으로 상대선수의 위 아래를 훑어 내려가더니만,
한손을 내밀어 요리조리 조준까지 해, 몸을 아래로 내리 낮춰가면서 칫수를 재는듯한 퍼포먼스로
상대선수를 어벙지게 만들었다.
(아마 본인은 상대의 헛점을찾는 컨셉이었다고 강변을 할지라도, 그표현의 전달은 그랬다.^^)
일부러라도 끼를 발산 하는게 취미같은 선수지만
어제처럼 혼자 다섯선수를 몽땅 이기게 될 정도까지야....미처 예상을 못했던 모양인지
세번째 선수를 앞에 두고서부터는, 무슨 기발한 본데뵈기가 어디 없을까....싶은 고민태가 역력했다.
그만 느닷없이 홍윤석선수 앞에 멍석이 쫘~악 깔려 버린것이다. ^^

그는 차례차례 승리를 거두고 난후, 본데뵈기를 하지 않고 판을 빙빙 돌며 체력을 모으기만 할뿐.
이미 자신이 장악 해버린 이삼백명의 시선을 마냥 즐기면서도,
막상 자기 스타일대로 재치있게 소화를 못해내는데엔, 못내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아무리 무대체질 이라해도
레파토리(?) 를 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이한 독무대가 벅찼을것이다.
졸지에 다섯차례나 쑈(?) 를 해야한다면, 누구라도 밑천이 달릴수 밖에 달리 방법이 있겠나......^^
그러다보니 어제는 한선수가 시작 부터 판막음 까지 다 해버리는 올킬 못잖게
돌발스레 주어진 단독 스테이지 앞에서, 꺼벙한 눈망울을 더욱 껌벅이는 홍선수의 움직임을 바라보는것으로도
관객들에게는 스믓한 웃음이 나올만한 재미가 됐다./

그리고 다채로운 색갈을 가진 무예동아리 다무팀과 겨룬, 양천구팀의 두번째 경기의 독주자는 성현준 선수였다.
관객석에서 민기아빠, 를 외치는 아내와 열띤 아이들의 환호속에,
성선수가 올린 4연승의 호성적은
지난해 황당한 여건을 만나 탈락했던 양천구팀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만 했으리라.
평소 꾸준하고 후덕해 뵈던 성선수의 택견이 모처럼 돋보이는 경기였다. /

그런데 어제따라 양천구팀 선수들이 새얼굴인가 싶더니만
불현듯, 작년 재작년에 이 택견배틀판에서 경기에 몰두하며 이그러지던 사내들의 땀 맺힌 얼굴들이 떠오른다.
지난일은 아깝고. 다시 못볼것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양천구 옛선수들을 위시해서 국민대. 성대율전. 명륜팀. 등에서 뛰던 작년. 재작년 멤버들.
어제 현장에는, 불쑥 시커먼사내로 변신한 이기범군을 비롯한 몇몇 얼굴들이 얼핏 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꾸려온 택견배틀.
적지않은 승패의 성취와 아쉬움으로 빚어낸 작은 드라마들이 뒤따라 스쳐가는데
작년 재작년,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수많은 그사내들과 하등 관계가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이렇게 물색없이 그이들의 근황이 궁금해지는것도, 쑥스럽고 멋적은일이 될라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가진 기억의 각인현상은,
처음 반복적으로 보고 들었던,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과 관심의 쏠림이,
나중의 것보다 더 큰비중을 갖는 측면이 있다.
아마 그래서 금년까지 네해째 벌어지고 있는 택견배틀중에
원년인 2004택견배틀이 내겐 가장 의미있고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선수들이 판위에 등장한 다음,
어정쩡하게 둘러서서 관객들에게 먼저 소개와 인사를 하는, 뵈주기 방식이지만.
첫해에는 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은 양팀선수들이, 한사람씩 차례로 일어서서 상대팀에게
먼저 깎듯이 예와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었다.
" 바로 내가, 지금 마주 바라보고 앉은 당신들과 택견으로써, 사람의 교류를 하고자 합니다 ~ " 는 듯이.........
지금도 내겐, 담백하고 상대에게 존중과 정감을 담아 건네는 예전의 소개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택견배틀의 실용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제 2007 초가을의 택견배틀도 8강을 골라냈으니, 막바지의 잰걸음 을 시작한셈이다.
그동안 내가 뜸한 탓으로,
금년에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서, 이미 예선을 마친 서울대팀을 비롯한 몇몇선수들을 지켜보지 못한채
2007년을 넘기게 됐다.
개인적으론, 어떤 소통도 없는 그사람들을 두고서도
애꿎은 사람의 마음 어느 한구석 에는, 누구와 헤어질때 의 선들한 바람 같은게 슬며시 스쳐가는듯한.
그런 어제 저녁이었다.

국대팬
ㅋㅋ 국민대의 특징은 웃음에 있었죠.
강해진남자 홍윤석도 좋지만 웃기는 홍윤석이 더 친근하답니다

홍윤석
아무것도 아닌님 멋진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기에 좀더 집중하기 위해서 본때를 안했던 것인데, 그것이 보시는 분들께는 지루해보였을 수도 있었겠네요~^^;;

다음부터는 열심히 본때를 준비해서 경기에 임하겠습니다~ㅋㅋㅋ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배틀조아
토욜은 택견의 멋에 일욜은 아무것도 아닌님 글맛에...
아쉽게도 2007 얼마 안남았네요..

다무팬
어제 다무감독님은 정말 환상적으로 날라다니셨어요. 날라다니다 지치시니까 "나 이제 그만 져도 되지?!!" 하고 다무팀원들에게 물어보시는 것도 그렇고 ㅎㅎㅎ 다무감독님의 그 몸 날려차는 기술 정말 비각술처럼 날렵하게 하시더라구요. 내년에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