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수들 모여 12년째 주말 시합
9㎡ 사각 공간에서 춤추듯 대련
화려한 발동작에 관람객들 탄성
"한국무예 원더풀" 외국인 참가자도
5일 서울 인사동 문화마당에서 열린 택견배틀에서 한 선수가 '날치기(손을 땅에 짚고 몸을 회전시켜 발로 차는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 결련택견협회 제공
“섰거라~!” “섰다!”
5일 오후 서울 인사동 문화마당. 빗방울이 떨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200여명의 관객들은 무예 고수들이 뿜어내는 화려한 발차기에 넋을 빼앗겼다. 5월부터 인사동에서 매주 토요일 치러지는 ‘2015 택견 배틀’ 현장이다. 장내 아나운서가 ‘초코호빵맨’ ‘친일청산’ 등 개성을 드러낸 별명과 주특기로 선수들을 소개하자 흥겨운 풍물놀이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동작으로 선수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택견의 박진감은 무술 시합 중 으뜸이다. 넓이 9㎡ 남짓한 사각형의 작은 경기장 안에서 몇 번의 투닥거림이 오갔을까. 한 선수의 오른발이 헐렁한 옷자락 사이로 춤을 추며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자 이내 심판의 손이 올라갔고 그렇게 경기는 종료됐다. 찰나의 승부가 끝이 나자 숨죽였던 관중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택견 배틀(결련택견협회 주최)은 인사동의 명물로 자리잡으면서 12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국 각지의 택견 고수들로 구성된 12개 팀이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거쳐 10월까지 경기를 계속 한다. 한국 전통무예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택견은 프로리그가 따로 없다. 이 행사도 아마추어 택견꾼들의 향연이나 승리를 향한 열정만은 여느 프로 격투기 못지 않다.
대중의 사랑은 택견이 가진 이런 역동성에서 나온다. 택견은 ‘이크, 에크’등 독특한 기합을 사용해 조금 느슨한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거나 넘어뜨려야 승패가 갈릴 정도로 공격 성향이 강하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로 몸통을 가격하면 반칙이다. LG전자 변호사로 서울 종로패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유수(32)씨는 공수도만 20년 가까이 배운 무술 마니아다. 그는 2010년 20년 넘는 외국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뒤 택견에 입문했다. 호씨는 “오와 열을 맞춰 기술을 연마하는 공수도와 달리 택견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움이 장점”이라며 “운동량도 이종격투기에 버금가 평소에도 꾸준히 몸을 단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합’을 강조하는 점도 택견의 매력이다. 예부터 단오가 되면 마을간 자존심을 걸고 택견 시합을 벌였지만 다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갈등의 소지를 없앴다. 7년째 택견을 수련 중인 구글코리아 직원 김재완(29)씨는 “얼굴을 한 번만 가격해도 승부가 나기 때문에 굳이 부상을 입히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무예”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장점에 외국인도 반해 올해 행사에는 호주와 벨라루스에서 온 파란 눈의 참가자도 있었다.
고유 무예라는 자부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택견에 쓰이는 구호와 기술은 모두 우리 말로 돼 있다. ‘섰거라’와 ‘섰다’는 각각 상대 선수에게 대전을 신청할 때, 그리고 준비가 됐다는 응답을 할 때 쓰는 표현이다. 격투기이지만 상대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택견에는 ‘딴죽걸기(발바닥으로 상대의 복사뼈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 ‘낚시걸이(발로 상대의 오금을 걸어 뒤로 넘어뜨리는 것)’ 등 화려한 발기술을 지칭하는 용어도 많다.
이날 여자친구와 경기를 지켜 본 대학생 김주강(26)씨는 “느리고 지루할 거라는 편견을 단박에 깨줄 만큼 시합 내내 긴장감이 넘쳤다”며 “기회가 되면 꼭 택견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을 여행중인 캐나다인 니콜라 페라로(35)씨는 “한국에는 태권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려하고 독특한 움직임을 가진 택견도 매우 인상 깊었다”고 했다. 도기현 결련택견협회 회장은 “택견은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고 무형식 속에서 잘 갖춰진 기술을 구현해야 할 만큼 과학적인 스포츠”라며 “우리 민속 무예의 장점을 널리 알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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